‘나쁜 사람’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반대로 ‘착한 사람’은 아무런 상도 받지 않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상을,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옳음’, ‘믿음’과 현실
이건 희망사항이지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쟁은 옳지 않다. 전쟁은 없는 게 좋다. 그래서 지금은 전쟁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전쟁이 없는 게 옳아도, 전쟁이 없다고 믿어도 전쟁으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게 옳아도, 그렇게 믿어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중에 죽어서 벌을 받느니, 상을 받느니 같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봤자 ‘착한 사람’은 불이익을 당하고 ‘나쁜 사람’만 이득을 보는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믿음’ 대신 진정으로 해야 할 것
정말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길 원한다면 현실은 대부분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나쁜 사람’은 이익을 본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후 이것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실이 이상과 맞지 않으면 현실을 이상에 맞게 뜯어고쳐야지 현실이 이상이라고 자신을 속여선 안 된다.

맺음
현실을 이상에 맞게(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게) 바꾸는 방법은 여럿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상이 실현되고 있다(내세에 상 또는 벌을 받을 것이다)고 착각하는 것은 그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는 것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 절대적인 착하다(선), 나쁘다(악)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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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uclipse.tistory.com BlogIcon 세스카리우스 2012.02.02 13:59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일 이해가 안되는것이 왜 선과 악을 나눌라고 혈안이 될까요.

    관점에 따라서 선과 악을 나눌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만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나 선과 악은 그때 관점과 시점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야훼도 다른 부족 나라 입장에서는 악신일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