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워워워>다. 이 코너에는 인생이 어둡고 외롭다는 것을 깨달은 첫째 절망이, 인생이 밝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둘째 소망이, 아직 어려서 인생을 모르는 막내 희망이가 나온다. 둘째 소망이는 막내 희망이한테 세상이 밝고, 아름답다고 알려준다. 그러면 첫째 절망이는 인생이 어둡고, 외롭다고 알려준다. 이렇게 절망이가 사실을 말하면 소망이는 부정적인 사고라고 비판한다. 그리곤 희망이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한다. <워워워>는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했다. 소망이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절망이가 반박하고, 소망이는 희망이한테 어떻게든 희망을 심어주려고 하는 형식으로.

난 이 코너를 볼 때마다 절망이를 응원했다. ‘그래 그거야! 계속 그렇게 해! 더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에 속아선 안 돼!’ 절망이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강요 속에서 홀로 외롭게 싸워온 나의 아군이었다.

그렇게 계속 진행되던 어느 날. 결국! 드디어! 소망이가 외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렇다. 소망이도 ‘술 푸게 하는 세상’을 술로 달래는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렇게 소망이도 절망이가 되었다. 그리고 코너는 막을 내렸다.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코너’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한 개그는 <행복전도사>이다. 행복전도사로 나오는 최효종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또 행복을 강요하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거부감은 금세 기쁨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10억씩 있잖아요? 10억씩 있는 우리는 행복한 거에요! 8,9억 있는 사람은 쪼~끔 불행한 거에요!”

이 개그는 우리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한다. 어떻게? 우린 10억이 없으니까. 우린 명문대를 못 갔으니까. 우린 뚜껑 열리는 비싼 차를 못 사니까. 우린 강남에 아파트가 없으니까.

10억씩 있으니 행복하다는 말은 결국 10억이 없는 우리는 불행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불행하다는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 너무나 재밌게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 개그는 결국 대박이 났다.


그리고 내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코너는 당연히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다. 이 코너는 <워워워>와 <행복전도사>의 덕을 좀 봤다고 생각한다. <워워워>에서 인생이 어둡다는 것을, <행복전도사>에서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박성광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대놓고 한 말에 우리는 별 거부감 없이 공감한 것이다. 두 개그가 뒤를 받쳐주고 있어서 박성광은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개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재밌게 표현한다. 세상은 더럽다. 인생은 어둡다. 우리는 불행하다. 이 개그들을 볼 때마다 난 행복을 느낀다. 나는 한 사람 설득하기도 벅찼던 것을 이들은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시켰다.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가 절망을 말하지만, 염세주의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단지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낸 허상을 벗겨 내고 싶은 것뿐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면 우리가 불행하다는 것을, 인생이 어둡다는 것을, 세상이 더럽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이미 행복하고, 인생이 밝고, 세상이 깨끗하면 바꿀 게 뭐가 있는가. 이대로 계속 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절망을 말하지만, 그 목적은 희망과 소망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있다. 절망 속에서 시작하자. 절망을 방해하는 희망고문을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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