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의 본성이다. 언제, 어디서건 종교가 없는 사회는 없었다.”

종교가 사실인가, 또는 유익한가는 따지지 않고, 아예 종교가 언제나 있었으니 종교는 ‘인간의 본성’이라며 종교를 정당화해버리는 말이다.

위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 인간의 본성은 용납해야 한다. (위 말 자체에는 이 전제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종교인이 종교의 정당화를 위해 위 말을 한다면 이 전제가 들어간 것이다)

세 전제 중 하나만 반박하면 위 주장은 틀린 것이 된다. 첫 번째 전제는 종교가 없는 사회가 단 한 곳이라도 있었다는 걸 밝히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한 그런 근거가 없으므로 옳다고 가정하겠다. 두 번째 전제 역시 나는 ‘인간의 본성’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므로, 이것도 옳다고 가정하고 글을 이어가겠다. 내가 반박할 것은 세 번째 전제, 인간의 본성은 용납하라는 주장이다.

전쟁,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행, 사기 따위의 범죄는 언제나 있었다(이것도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단지, 종교가 언제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것도 같은 이유로 언제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전제의 가정에 따라 이런 범죄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들이 언제나 존재한 ‘인간의 본성’이니 용납해야 하는가? 누군가 “전쟁은 인간의 본성이다. 언제, 어디서건 전쟁이 없는 사회는 없었다.”면서 전쟁을 정당화한다면 우린 이를 용납해야 하는가? 당연히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제아무리 ‘인간의 본성’일지라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용납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가, 아닌가 이다. 종교를 정당화하려거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언급 대신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실이다’는 주장과 함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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