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이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무신론자인 내가 만약 죽어서 아니면 갑자기 신(여러 신 가운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 야훼로 하겠다)이 내 앞에 나타나서 러셀에게 했던 질문을 던진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나도 신의 존재에 대해선 러셀과 비슷한 대답을 할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 창조과학회라는 유사과학단체가 조작한 것들 말고는 여태까지 신이 존재한다는 그 어떤 증거가 발견되거나 논리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신의 존재를 반증하는 증거나 논리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셀의 이 답변이 내겐 좀 불만족스럽다. 이 말은 증거만 확실했다면 러셀이 신(야훼)을 믿었을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셀은 야훼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이 내 앞에 있어도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제부터 설명을 하겠다. 전에 어느 기독교인이 나에게 물었다. "만약 하나님이 눈앞에 나타나시면 하나님을 믿을 건가요?" 난 위와 마찬가지로 믿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믿지 않겠다고 했을까? "내가 틀렸을 리가 없어!" 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려고? 아니다. "신을 믿는다"는 말엔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뜻도 있지만 '신을 찬양하거나 신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도 있다. 이게 꿈이나 환상, 조작이 아니라면 신이 내 앞에 나타났으니 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겠지만 신의 뜻에 따르진 않을 것이다. 종교인들은 신이 존재하는 것만 확실하면 믿는 거지 더 뭐가 필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 야훼는 자비롭거나 사랑이 가득하거나 관대하거나 하지 않다. 별다른 죄도 짓지 않은 불신자들을 믿지 않았다는 '죄'로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하며, 인류의 아득한 조상이 저지른 잘못을 (인간을 만들면서 잘못을 저지를 것을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그 수많은 후손에게까지 연좌제를 씌워 죄인 취급하며, 유대인을 위해 타민족을 학살하는 등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잔인한 신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그 신의 뜻을 어찌 따르란 것인가? 당신은 악마가 나타나서 "내가 실제로 존재하니 나를 믿어라."하면 악마를 믿고 그의 뜻을 따르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악마에 맞서 싸우거나 악마를 돕더라도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들 뿐 기회만 되면 악마에 반기를 들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야훼라는 신은 내게, 나를 비롯한 수많은 무신론자에게 포악한 악마일 뿐이다. 그러니 이 야훼라는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어떻게 이를 믿고 따르겠는가.

이제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겠다.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그 어떤 증거나 논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당신이 없음을 증명하는 논리나 증거만을 봤을 뿐이다. 또한, 설령 당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나 증명을 알았다 해도 당신은 포악한 악마일 뿐이기에 나는 당신을 믿거나 당신의 뜻에 따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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